世界




혼란의 씨앗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싹을 틔워 결국 인간의 마음에는 악이 깃들었고 이에 귀신들의 우두머리가 귀계의 경계를 넘어 인세에 현현하니, 팔황(八荒)의 온 창생이 도탄에 들었다. 허나 고천의 선계가 인계에 간섭하는 것은 곧 균형을 해치는 일이라. 이를 물리치기 위해 결국 인계의 수많은 선사들이 뜻을 모았다.
선계가 인계에 직접 손을 뻗치지 못하는 반면, 인계와 맞닿아 있던 귀계에서는 악한 것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귀왕은 모든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거대한 힘을 이루었으니, 날이 지날수록 인계에 대한 귀왕의 영향은 거세져만 갔다. 흉악한 파문이 천하를 뒤흔들었다.
강호인들은 힘을 합쳐 귀왕을 귀계로 내쫓고자 했으나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귀기가 하늘을 가리고 땅이 거멓게 물들었으며, 영맥이 통하지 않는 범인들은 저항의 여지 없이 스러져 갔다. 허나 재앙이 선도를 걷는 이라고 하여 피해갈 리가 없을 터. 세가와 문파들 역시 수없이 많은 수사를 잃고 멸문의 문턱에 이르렀으니 이를 어찌 재해라고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그리하여 최초의 현현으로부터 수 년 후, 마침내 하늘의 틈이 메워졌다. 수많은 죽음과 삶이 세상을 스쳐 구천지하(九泉地下)로 돌아간 후에야 중원 땅에 비로소 한 줌 평온이 내려앉았으니. 인세의 뜻을 한 데로 모아 이 해를 ‘금양(今陽)’ 1년이라 명명하고 새로이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 인계(人界)에 혼란이 도래하였다.

동부
드넓은 자연지대. 높은 산이 촘촘히 모여있어 하나의 거대한 생명과 다름없이 군락을 이루니 웅장함이 일품이다. 빈틈없이 채워진 절벽은 가파르며 시야에 훤하게 들어오나 여러겹 굳건히 자리를 잡아 비밀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높은 지형 탓에 온도가 낮아 동물이나 풀이 자라나기 힘들다.
섬을 만들고 호수를 만드는 것이 인간이라고는 하나 몹시 험준하여 드넓은 중원의 땅 중에서 가장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다. 동시에 때 묻지 않은 고요함으로 수선인이 수련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봉우리에는 눈이 내려앉아 있으며 가장 안쪽으로 들어서면 눈보라가 치는 풍경을 마주할 수 있기도 하다.

서부
비교적 따뜻하고 습도가 높아 우거진 녹음에 둘러싸여 있다. 깊은 역사를 지닌 물건이 종종 발견되는 곳으로 귀하게 보존되고 있는 구역도 존재한다. 자연에 더불어 살아가는 느긋한 성향의 사람들이 많으며 인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사람간의 거리가 정답고 담벼락이 낮다.
숲을 터전 삼아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따스함이 내려앉아 있으나 다른 지역에 비해 기후가 뚜렷하다. 자연을 활용하는 지식이 풍부하여 기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자연 경관 외에도 신선한 작물이나 열매를 활용한 다양한 식재료가 또 다른 즐길 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탓에 지식의 깊이가 가장 깊은 지역이기도 하다.

남부
동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과 북쪽에서 내려오는 따뜻한 기운이 얽혀 온화한 기후를 조성한 지역. 강을 낀 채로 자연재해가 드물어 자연스레 사람이 모이니 마을과 도회를 이루었다. 차례대로 사람이 모이니 흘러가기만 하던 강물에 배가 떠다니고 그 주변을 수상가옥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강의 끝에는 커다란 운하가 있어 중원에서 가장 사람의 손을 많이 탄 지역이자 발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범인이 모여 살기에 선문과 멀다고 느껴질 수 있으나 법기나 서책의 거래가 오가는 곳이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 남부를 거쳐 가는 수사 또한 많다. 활기가 모여들어 언제나 시끌벅적하고 당연스레 그 화려함이 높아지니 밤이 찾아와도 등불이 꺼질 줄을 모른다.

북부
너른 들판과 거대한 호수가 가장 눈에 띄는 지역이다. 기본적으로 지대가 낮으며 높은 지형이 적어 탁 트인 풍경에 매료되어 머무는 이들이 많다. 그 덕분인지 북부의 사람들은 대개 여유롭고 느긋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높은 건물을 세우는 것이 불가하여 들을 떠돌며 낮은 천막에 휴식을 취하곤 한다. 쉼 없이 걸어서 나흘 만에 도착하는 먼 곳까지도 한눈에 보이니 그 탓에 거리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타 지역에 비해 기후가 모호한 편으로, 기본적으로는 해가 강하고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다. 일부 지역이 관광지로 개발되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고요하고 잔잔한 바람을 지워내지는 못했기에 평화로운 분위기를 띠고 있다.



중원의 정중앙에서 서쪽으로 조금 치우친 곳에 우뚝 솟은 하벽산(河壁山)은 봉우리가 구름을 꿰뚫고, 웅장한 풍광으로 하늘을 가릴 정도라. 그 영기가 예사롭지 않으니 곤륜산과 더불어 대륙 서부의 선산(仙山)이라 불리는 것에 부족함이 없다. 가장 깊은 곳에는 영수와 영초가 자리한다 알려져 있으나 사람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에 이를 본 이는 무척 드물다.
이러한 하벽산 높은 곳에 위치한 선문(仙門), 비화문은 붉은색을 문파의 상징색으로 취하고 있어, 영험한 산을 뒤로 두고도 그 비범함이 여전했다. 붉은 빛은 가장 처음의 빛깔이며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가지고 있는 깊이이다. 선한 이도 악한 이도 모두 똑같이 살가죽 아래 피가 흐르듯, 선을 품어 하나로 모으는 것을 중히 여기는 문파의 뜻을 강하게 표방하고 있으니 이는 시(始)요, 합(合)이고, 애(愛)다.
장문인이 자리하고 있는 중앙에는 식당, 학관, 연무장과 같은 낮고 넓은 건물이 여러채 있으며 문파의 일원들은 가장 큰 건물인 유화관(柔和館)에 모여 서로의 배움을 점검하거나 다하지 못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 주위로는 여러개의 령(嶺)이 자리잡고 있는데, 각 령에는 령주(嶺主)와 그의 제자들이 머무르고 있으며 모든 령이 각자의 자리에서 비화문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비화문 입문생의 정식 수련이 시작되는 나이는 12세로, 이 시기부터 최소 반년의 공통 수련을 거친 후 자질을 보인 경우에 한하여 령에 소속되게 된다.
비전 검법은 자화검법(刺花劍法)으로,
꽃잎을 갈라 내듯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가는 동작이 특징이다.
자화검법은 특히나 기본기에 집중하는데 모든 무술의 기본이 될 수 있고, 어떠한 형태로든 변형시킬 수 있기에 가장 특별한 길을 찾을 수 있는 검법으로 여겨진다. 자화검법의 높은 경지에 이르면 어검술을 펼칠 수 있다.
비전 술법은 적원술(赤原術)로,
근원이 되는 혈맥에서 영력의 흐름을 끌어와 술법으로서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좌선을 통해 영맥의 흐름을 느끼는 것이 적원술의 기본이며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원신(原身)의 힘을 이끌어내, 영력을 무엇보다도 단단하게 응집시킨다. 영맥을 인지하고 흐름의 향방을 깨닫는 것이 제일(第一)의 단계로, 적원술을 갈고 닦으면 이를 체외로 끄집어내 장막과 같은 특정한 형태를 이루거나, 다수의 인원이 함께 진을 펼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